진료

뇌전증(간질) [ epilepsy ]

뇌전증(간질)이란?

간질 자체가 잘못된 용어는 아니지만 사회적 편견이 심하고, 간질이라는 용어가 주는 사회적 낙인이 심하기 때문에 뇌전증이라는 용어로 변경되었다. 비록 용어는 변경되었으나 뇌전증과 관련해서는 명명법 이외에는 바뀐 것이 없으며 진단과 치료에 실질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생리적으로 뇌의 일부 혹은 전체에서 신경세포의 갑작스럽고 무질서한 이상 흥분 상태에 의해 야기되는 운동, 감각, 자율신경계 또는 정신적인 증상이 발작이라는 현상이며 이러한 발작이 자발적으로 발작이 2회 이상 재발되는 경우에 간질이라는 진단을 내릴 수 있다.


간질의 발생빈도는 지역 및 인종에 따라 차이가 있으며 역학조사 방법에 따른 결과보고도 다양하여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매년 발생율은 인구 100,000명당 11~49명으로 보고된 바 있으며, 특히 1세 이전의 영아기(인구 100,000명당 100명)와 60세 이후의 노년기에서 발생률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간질의 유병율은 전체 인구의 0.5에서 1%이며 이중 20% 정도가 항 경련제로 조절이 안 되는 난치성 간질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통계를 우리나라에 적용하면 대한민국에는 약 30여만 명의 간질 환자가 존재하며 이중 약 6만 여명의 환자는 난치성 간질일 것으로 추정된다.


 

원인

간질의 원인은 밝혀지지 않은 경우도 많으나 선천성 기형, 감염, 종양, 뇌혈관 질환, 퇴행성 뇌 질환, 외상 등 대뇌피질의 손상을 초래할 수 있는 다양한 질환에 의해 발생 가능하다. 상기 질환이 있는 모든 환자들에서 간질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어서 유전적 요소가 작용하리라 추정된다.

유전적인 요소는 아직까지는 불확실하나 어느 정도 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간질환자의 자손이나 형제 중 간질이 발생활 확률이 정상 군에 비해 약 3배정도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확실히 유전자적 이상이 밝혀진 경우는 극히 드물며 현재 이 분야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간질의 원인은 연령에 따라 다르며 소아에서 발병한 경우는 출생시의 뇌 손상이나 뇌 피질 이형성증 등 발육부전에 의한 경우가 흔하나 성인에서 발병한 경우는 뇌 종양 등에 의한 경우가 더 흔하다.


 

증상

뇌전증 발작은 크게 부분 발작과 전신 발작으로 나뉜다.

부분 발작은 대뇌겉질(피질)의 일부분에서 시작되는 신경세포의 과흥분성 발작을 의미하고,

전신발작은 대뇌양쪽반구의 광범위한 부분에서 시작되는 발작을 의미한다.

 

1) 부분 발작

 

① 단순부분발작(simple partial seizure) : 대뇌의 일부분에서 시작되며 대뇌 전반으로 퍼지지 않으며 의식이 유지되는 것이 특징이다. 발병 부위에 따라 운동, 감각, 정신증상 등 다양한 형태가 있다. 한 쪽 손이나 팔을 까딱까딱하거나 입꼬리가 당기는 형태의 단순부분운동발작, 한 쪽의 얼굴, 팔, 다리 등에 이상 감각이 나타나는 단순부분감각발작, 속에서 무언가 치밀어 올라오거나, 가슴이 두근거리고 모공이 곤두서고 땀이 나는 등의 증상을 보이는 자율신경계증상, 또는 이전의 기억이 떠오르거나 낯선 물건이 장소가 친숙하게 느껴지는 증상(데쟈뷰 현상) 등의 정신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② 복합부분발작(complex partial seizure) : 복합부분발작의 특징은 의식의 장애가 있다는 점이다. 의식장애와 더불어 의도가 확실하지 않은 반복적 행동(자동증)이 나타날 수 있다. 흔히 초점 없는 눈으로 멍하니 한 곳을 쳐다보면서, 입맛을 쩝쩝 다시거나 손을 이리저리 휘저으면서 주변에 놓인 사물을 만지작거리는 모습이 관찰될 수 있다. 환자는 자신이 이러한 행동을 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 드물게 비우성반구(오른손잡이 한국인에서는 우측 뇌반구)에 발생하는 발작의 경우 자동증이 나타나지만 의식이 유지되고 말을 하며 환자가 기억을 하는 경우도 있다.

 

③ 부분발작에서 기인하는 이차성 전신발작(partial seizure with secondary generalization) : 발작 초기에는 단순부분발작이나 복합부분발작의 형태를 보이지만, 신경세포의 과활동성이 대뇌 전반적으로 퍼지면서 전신 발작이 나타나게 된다. 환자는 쓰러지면서 전신이 강직되고 얼굴이 파랗게 되는 증상(청색증)이 초기에 나타나고,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팔다리를 규칙적으로 떠는 형태로 증상이 진행된다. 일반적으로 가장 흔하게 관찰되는 뇌전증 발작의 형태이다.

 

2) 전신 발작

 

① 소발작(결신발작; absence seizure, petit mal) : 소발작은 주로 소아에서 발생한다. 정상적으로 행동하던 환아는 아무런 경고나 전조 증상 없이 갑자기 하던 행동을 멈추고 멍하게 앞이나 위를 바라보는 모습을 보이며, 간혹 고개를 푹 수그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 발작은 대개 5~10초 이내에 종료되며, 길어도 수십 초를 넘기지 않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환아는 자신이 발작을 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발작 직전에 하던 행동이나 상황으로 복귀한다. 간혹 눈꺼풀이나 입 주위가 경미하게 떨리는 간대발작(clonic seizure)이나 입술을 핥고 옷을 만지작거리는 자동증이 동반될 수도 있다. 숨을 크게 몰아 쉴 때 나타나기 쉽다.

 

② 전신강직간대발작(대발작; generalized tonic-clonic seizure, grand mal) : 전신발작 도중에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발작 형태이다. 발작 초기부터 갑자기 정신을 잃고, 호흡곤란, 청색증, 고함 등이 나타나면서 전신이 뻣뻣해지고 눈동자와 고개가 한 쪽으로 돌아가는 강직 현상이 나타난다. 강직이 일정 시간 지속된 후 팔다리가 규칙적으로 떨리는 간대성 운동이 나타난다. 입에서 침과 거품이 나오고, 턱의 간대성 발작 때 혀를 깨물기도 한다. 발작 중에 소변이나 대변을 지리기도 한다. 발작 후에는 대개 깊은 수면이 뒤따르고, 일시적인 의식 장애가 나타나기도 하며, 일정 기간 동안의 기억 소실이 동반된다. 일반인들이 가장 많이 목격하였을 뇌전증 발작의 형태이다.

 

③ 근육간대경련발작(myoclonic seizure) : 빠르고 순간적인 근육의 수축이 한쪽 또는 양쪽 팔다리와 몸통에 한 번 또는 연달아 반복되는 것이 특징이다. 깜짝 놀라는 듯한 불규칙적인 근육 수축이 나타나는데, 흔히 식사 중에 깜짝 놀라며 숟가락을 떨어뜨리는 형태로 잘 나타난다. 주로 잠에서 깬 직후에 발생하거나 수면이 부족할 때 발생하며, 피로감, 정신적인 스트레스, 광자극 등에 의해 심해지기도 한다. 이 발작은 청소년기에 종종 발병하는 청소년근육간대경련발작(juvenile myoclonic epilepsy)의 특징 중 하나이기도 하다. 또한 저산소성 뇌손상으로 인한 뇌전증에서 주로 나타나는 뇌전증 발작이기도 하다.

 

④ 무긴장발작 : 순간적인 의식 소실과 함께 전신의 근육에서 힘이 빠지면서 넘어지는 형태이다. 넘어지면서 흔히 머리를 땅이나 가구에 부딪혀서 머리, 안면, 치아 등을 다치는 경우가 많다. 소아기에 나타나는 레녹스-가스토 증후군(Lennox-Gastaut syndrome)에서 주로 볼 수 있으며, 이 경우 치료 결과가 좋지 않은 편이다.


 

치료

1. 약물 치료의 시작
생후 첫 번째 뇌전증 발작으로 인하여 내원한 환자는 대부분 즉시 항뇌전증약을 투여하기보다는 여러 가지 검사를 받는다. 이는 일반적으로 증후성이 아닌 첫 번째 발작에서는 약물치료를 시작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른 것이다. 각종 검사에서 특별한 이상이 발견되지 않는 경우에는 약물치료를 하지 않고 경과를 관찰하게 된다. 하지만 두 번 이상의 뇌전증 발작이 특별한 유발 요인 없이 나타날 경우 약물 치료를 시작한다.

그러나 첫 번째 발작이라 하더라도,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약물 치료를 즉시 시작하는 것이 보통이다.

 

1) 뇌파검사에서 뚜렷한 뇌전증파가 관찰될 때
2) 뇌에 구조적인 이상이 있을 때(뇌MRI에서 병리적 변화가 확인되는 경우)
3) 신경학적 진찰에서 이상 징후가 발견될 때
4) 뇌전증 발작의 가족력이 있을 때
5) 과거력 조사상 뇌염 혹은 의식 소실을 동반한 외상이 있을 때
6) 현재 활동성 뇌감염을 앓고 있을 때
7) 첫 번째 발작이 뇌전증중첩증으로 나타날 때

 

단, 뇌전증 환자이더라도 뇌파 검사상 정상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따라서 뇌전증 발작의 증상이 분명하고 이 증상이 반복된다면, 뇌파 검사나 뇌MRI가 정상이라 하더라도 적절한 약물을 투여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2. 항경련제

 

1) 고전적 항경련제: 이전부터 많이 써오던 약물들로 페니토인(Phenytoin: 페니토인 정, 히단토인 정), 발프로에이트(Valproate: 데파킨 정, 오르필 정, 올트릴 정), 카바마제핀(Carbamazepine: 테그레톨 씨알 정, 카마제핀 정, 카바민 정), 페노바비탈(Phenobarbital: 페노바르비탈 정), 에토숙시마이드(Ethosuximide: 자론틴 캅셀) 등이 있다.

 

2) 새로운 항경련제: 1990년대 이후 개발 상용화된 약물로 기존의 항경련제와는 다른 성질을 갖는 것이 많고, 심각한 부작용이 적으며 약물상호작용 측면에서도 우수한 점이 있어 처음에는 주로 추가약물요법으로 많이 쓰였으나 점차 단일요법제로 많이 쓰이고 있다. 토피라메이트(Topiramate: 토파맥스 정 등), 라모트리진(Lamotrigine: 라믹탈 정), 비가바트린(Vigabatrin: 사브릴 정), 옥스카바제핀(Oxcarbazepine: 트릴렙탈 정), 레베티라세탐(Levetiracetam: 케프라 정), 프레가발린(Pregabalin: 리리카 정), 가바펜틴(Gabapentin: 뉴론틴 정, 가바틴 정 등) 등이 있다.

 

3. 뇌전증의 치료 전략
약물치료의 목표는 지속적으로 약을 사용하더라도 특별한 부작용 없이 증상을 조절하는 데 있다. 따라서 약물 선정은 효과와 안전성을 모두 고려하여 결정하게 된다. 한 가지 약물로 발작의 증상이 충분히 조절되지 못할 때는 새로운 약물을 추가하거나 다른 약물로 교체하게 되는데, 어떠한 전략이 더 효과적인지는 아직 단정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두 가지 약물을 복합적으로 충분히 투여했는데도 뇌전증의 증상이 조절되지 않는 경우를 난치성 뇌전증이라고 한다.

 

4. 발작 증상 조절 후 항뇌전증약의 중지
항뇌전증약 치료 이후 증상이 만족스럽게 조절된다면 항뇌전증약 투여를 중단하는 것을 고려한다. 일반적으로 소아의 경우에는 보통 2년 동안 뇌전증 발작이 없을 때, 성인의 경우에는 3년 정도 뇌전증 발작이 없을 때 항뇌전증약 투여 중지를 시도하게 된다. 하지만 성인의 경우 사회 활동 및 운전 등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항뇌전증약 투여 중지는 의사와 환자 사이의 충분한 대화와 심사숙고가 전제되어야 한다. 항뇌전증약을 중지하였을 때 소아는 약 30%, 성인은 약 40~50% 정도에서 뇌전증 발작이 재발하는 것으로 현재 알려져 있다.

 

신경학적 결손, 뇌병변의 존재, 부분발작, 청소년근육간대경련발작(juvenile myoclonic epilepsy), 소아기 발병, 뇌파검사상 발견되는 이상 증상, 복합약물치료 등의 위험인자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서 재발률이 증가할 수 있다. 그러나 장기간 뇌전증 발작이 없었다면 재발의 위험은 감소한다. 약물 투여 중지 후 발작이 재발하는 경우, 대개 약물을 다시 투여하기 시작하면 발작을 조절할 수 있다. 그러나 약 10%에서는 약물 투여를 다시 시작하여도 잘 반응하지 않을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5. 뇌전증 수술
뇌전증 환자는 우선 약물로 치료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약물치료로 뇌전증 발작이 조절되지 않을 때에는 뇌전증 수술 등의 비약물요법을 고려하게 된다. 뇌전증의 원인이 되는 병리적 변화를 뇌에서 찾아낼 수 있는 경우에는 국소 절제술을 통하여 해당 부위를 제거하는 것이 효과적이고 안전하다. 뇌전증 수술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환자의 증상이 뇌전증이 맞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약물치료를 충분히 시도해 보았는지를 확인해 본다. 그리고 비디오뇌파검사와 뇌MRI, 양성자단층촬영 및 단일양자방출단층촬영 등의 검사를 시행한다.

 

그 외에 뇌의 우성반구(언어 및 기억을 주로 담당하는 반구)를 확인하기 위하여 와다 검사(Wada test)를 시행하며, 설문조사와 면담조사를 통하여 신경인지기능검사를 받는다. 두개골을 열고 뇌 표면에 전극을 붙이는 뇌피질파검사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이전까지 시행한 검사들에서 뇌전증 발작의 원인이 되는 병리적 변화가 불확실한 환자의 경우에 시행하는 검사이다.

 

특히 내측두엽뇌전증에서 해마경화증이 있는 환자의 경우, 발작의 증상이 5년 이내에 약 50~60% 이하로 감소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측두엽 이외의 부분에 병적인 변화가 생긴 경우에는 수술 결과가 측두엽의 경우에 비해 좋지 않다. 뇌전증 수술 후에도 최소 1~2년간은 약물치료를 계속하고, 발작 재발이 없으면 약 1년에 걸쳐 서서히 약물을 줄여나간다.